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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마와숙녀-박인환--(낭송:하늘바다)

춘양목연구회 2012. 10. 22. 18:36

 

 

    목마와 숙녀 /박인환-(낭송:하늘바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 <박인환시선집>(1955) -






출처 : 아름다운 음악여행
글쓴이 : CJ하늘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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