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외/춘양지역

졸업선물로 준 솔씨

춘양목연구회 2012. 4. 11. 04:23

 

“여기저기에 소나무 그늘이 있으나 산은 거의 벌거 벗었다.” 1894년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이사벨라 비숍이 조선 방문 후에 쓴 서울의 첫 인상이다. 일제의 조직적인 삼림자원 수탈과 사람들의 땔감 남벌로 우리나라 산은 절반 이상이 민둥산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나무는 용케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괴산의 왕소나무,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 이천의 백송, 합천 묘산면 화양리의 구룡목, 지리산의 천년송, 함양 목현리의 구송, 최근 도로개설로 위기를 맞은 울산 북구 강동의 활만송 등 사연 많은 나무가 소나무다. 언젠가 산불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강원도의 어느 마을 언덕배기에서 불에 검게 그을린 밑둥치를 뚫고 기적처럼 살아난 어린 소나무는 걸음을 멈추게 했다.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나무가 많은 중국 황산의 명송들은 뜬구름을 부리고 노는 듯 기기묘묘하다. 하지만 그 기개만은 우리 소나무에 못 미친다. 로마의 키가 훌쩍 큰, 멋진 ‘우산 소나무’도 아름답긴 하나 우리 소나무엔 못 따라온다.

반죽음 끝에 되살아난 속리산 국립공원의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은 700살이 넘었다. 지난 1979년엔 해충에 시달려 회생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3년동안 2억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들여 영양제와 인공나무껍질 수술 등으로 다시 푸르름을 되찾기도 했다. 또 올해는 물기가 많은 폭설로 곳곳에서 가지들이 뚝뚝 부려져 치명상을 입은 ‘소나무 환자’가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울산 북구 양정초등학교는 그제 졸업식에서 ‘외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루지 못하랴’라는 글귀와 함께 졸업생들에게 소나무 씨앗 한 봉지 씩을 선물로 나눠줬다. 경북 봉화군의 춘양목연구회가 춘양목 솔방울에서 정성을 다해 받은 솔씨라고 한다. 씨앗이 움터 나무가 자라면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자라 더욱 큰 나무로 이 세상의 숲이 될 수 있으리라.

자연에선 물론 인간세상엔 낙낙장송이 드물고 줏대없이 아무에게나 머리 숙이는 잡목들이 득세한다. 절개와 지조를 묵언으로 가르치는 소나무들을 만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숲을 이룬 이 세상을 꿈꾸어 본다. 

 

울산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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