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과 춘양목의 비교
<8.15 광복절 100주년을 맞아 복원된 광화문 앞에서 이명박대통령은 경축사를 하였다.
광화문복원은 3년 8개월간 280억이 투입된 대역사.
금강소나무가 8t 100대분이 소요되었다>는 기사가 뜹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백두대간의 소나무인 춘양목과 금강송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간단히 메모해봅니다.
‘금강송’과 ‘춘양목’은 둘다 학명 : Pinus densiflora for. erecta Uyeki의 속명입니다.
‘금강송’은
1928년 우에기 호미끼라는 일본인이 쓴 ‘조선산 소나무의 수상 및 개량에 관한 조림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춘양목’은
비슷한 시기 춘양목재회사에서 반출된 우량소나무에 대하여 도편수. 목공 등 일반 민중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철도와 관계는 일부분으로 영암선이 1955년 7월 1일 개통되었으므로 일제시대 춘양역사에 쌓여있던 목재로 인해 불리워졌다는 것은 맞지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소나무의 이름은 황장목, 송입니다.
‘금강송’이라는 이름은 일본이 조선자원의 착취를 목적을 위하여 조선산림자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일본인에 의하여 이름지워지고, 연구되어진 우리의 소나무는
그들에 의하여 남벌되어집니다.
그러므로 금강송은 우리소나무에 대한 수탈의 역사가 담긴 이름입니다,
‘춘양목’은 같은시기 나무를 사용한 우리나라 수요자에 의해 명명되었습니다.
1922년에는 일본임학자 혼다 세이로쿠의 소나무망국론.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을 나타내는 지표종이며 소나무가 많은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금강소나무의 이용가치를 확인하고, 광산과 연계한 자원수탈용 도로개설이 시작됩니다.
’춘양목‘은 장인들에 의해 실제 노동현장에서 사용되고 인정된 언어로서 민중 저변에 스며든 이름입니다.
'억지춘양''얼춘양''얼치기춘양'은 타지역의 유사춘양목을 이르는 단어인데, 도착지에서 확인할수있는 물표가 '춘양목재'였으므로 생겨난 부정적 단어입니다 .
‘금강송’이 현재에 다시금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소나무재선충이라던가 솔잎혹파리의 번식으로 인한 정부의 소나무보호 필요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실제 소나무를 지칭하면서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기차와 자동차의 운송거리에따른 효율성을 고려하면 산에서 벌채된 목재를 자동차로 옮길때 가까운 기차역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경제적입니다. 인근지역에서 벌채된 소나무를 춘양역에 모으기보다는, 임기, 석포, 법전, 봉화 등 가까운 역으로 옮기는 것이 편리합니다.
당시 '임원재'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임원항에서 많은 목재가 나갔다고 하여 생긴 말입니다. 춘양에 많은 소나무를 쌓아놓아서 생기는 이름은 '춘양재'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재로서의 '춘양목’은 사람들에 의해 오랜시간 최고급 문화재나 주거용으로 가공 사용됨으로서 문화적감정을 지니는 반면,
생목으로서의 ‘금강송’은 아무리 가공을 하더라도 문화적 감정이 배제된 자연물 그 자체라는 점에서
‘춘양목‘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이라는 것은 사용함으로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니기다! 니기다라고 불리는 소나무의 등껍질 어디에 우리민족의 기상이 베이던가요. 백두대간에 울울창창한 낙락장송을 우리민족의 소나무로 품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가 지은이름으로 우리목소리로 불러주어야합니다.
다음 광복적에는 광화문복원에 100대분량의 춘양목이 사용되었다는 기사를 기대하며
춘양목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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